
경기가 나빠지면 사람들이 지갑을 닫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닫는 게 아니라 쓰는 기준이 달라지는 거였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4.0%로 올린 날,
증시는 출렁였고 달러 인덱스는 100선을 넘어섰습니다.
그 뉴스 속에서 제가 유독 오래 들여다본 건 LVMH와 로레알의 시가총액 역전 이야기였습니다.
립스틱 효과, 사람들은 정말 작은 사치로 몰릴까
루이비통과 디오르를 거느린 세계 최대 명품 그룹 LVMH가 올해 들어 주가가 35% 넘게 빠졌습니다.
반면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5% 상승하면서 프랑스 증시 시가총액 1위를 가져갔습니다.
이런 역전이 일어난 건 2017년 이후 처음입니다.
투자은행 베렌버그는 이 현상을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로 설명했습니다.
립스틱 효과란 경기가 위축될수록 고가의 사치품 소비는 줄고,
비교적 작은 돈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입니다.
수십만 원짜리 지갑은 참지만, 3만 원짜리 립 하나는 사게 된다는 거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도 육아를 하다 보면 나 자신에게 큰돈을 쓰는 건 망설여지거든요.
그런데 쿠션 하나, 립 하나 바꿨을 때 얻는 만족감이 생각보다 꽤 크다는 걸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됐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가 되는 가격대가 저한테는 2~3만 원이었습니다.
다만 '경기가 나빠지면 화장품이 잘 팔린다'고 단순하게 결론 내리는 건 위험하다고 봅니다.
로레알이 강한 건 저가부터 프리미엄까지 포트폴리오가 넓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지불한 가격만큼 충분한 만족을 느끼는 제품이 살아남는 것이지, 싸다는 이유만으로 팔리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로레알은 2분기에 세계 모든 사업 지역에서 매출이 증가했습니다(출처: L'Oréal Finance).
- LVMH 올해 주가 하락률: 약 35%
- 로레알 올해 주가 상승률: 약 5%
- 베인 추산: 가격 인상 때문에 명품 구매를 포기한 소비자 약 6천만 명
- 중국 진출 25개 명품 브랜드, 7월 매출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
저출생이 키즈 시장을 무조건 줄이는 건 아닐 수 있다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이야기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작년 에버랜드 입장객은 전년 대비 15.6% 급감해 472만 명에 그쳤고, 롯데월드도 3.8% 줄었습니다.
저출생으로 청소년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도 아이가 생기고 나서 오히려 체험형 장소를 더 많이 찾아다니게 됐습니다.
놀이기구를 많이 타는 곳보다 동물을 직접 보고, 승마를 해보고, 자연에서 뛰어놀 수 있는 경험에 기꺼이 돈을 쓰게 됐습니다.
단순히 '아이 수가 줄었으니 키즈 시장도 줄었다'는 공식이 제 현실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고객 단가(ARPU, Average Revenue Per User)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고객 한 명이 평균적으로 얼마를 쓰느냐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아이 수가 줄수록 한 아이에게 집중되는 부모의 소비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즉, 방문객 수 경쟁보다 '한 가족이 와서 얼마를 쓰고 싶게 만드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을 수 있습니다.
에버랜드는 개원 50주년을 맞아 생태형 콘텐츠로 가족 방문객을 공략하고 있고,
롯데월드는 5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10년 만에 대형 어트랙션을 새로 도입했습니다.
넥슨과 손잡고 메이플스토리 테마존도 열었는데, 2030세대와 외국인을 겨냥한 전략으로 읽힙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두 곳 모두 '숫자'보다 '이유'를 만들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AI 인프라, 보이는 것 너머를 봐야 한다
저는 AI를 매일 씁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면, AI 산업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ChatGPT나 엔비디아부터 떠올렸습니다.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뉴스를 보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제가 프롬프트 하나를 입력하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서버가 돌아가고 전기를 씁니다.
AI 서비스 하나가 굴러가려면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그 안에는 변압기, 케이블, 냉각 시스템, 광통신망이 들어갑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게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기인지 와닿더라고요.
미국 연료전지 기업 블룸에너지가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블룸에너지가 만드는 SOFC(고체 산화물 연료전지)는 천연가스나 수소를 활용해 데이터센터 바로 옆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SOFC란 전해질로 고체 세라믹 소재를 쓰는 연료전지로, 별도 발전소 없이 소규모 분산 발전이 가능하다는 게 핵심입니다. 송전망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가스관만 있으면 빠르게 설치가 가능합니다(출처: Bloom Energy).
실제로 국내에서도 블룸에너지 공급망에 연결된 기업들 주가가 크게 움직였습니다.
슈퍼커패시터(전력 부하가 급변할 때 전기를 빠르게 저장하고 방출하는 장치)를 공급하는 기업은 15% 넘게 올랐고, 피팅과 밸브 같은 부품을 납품하는 곳도 10% 상승했습니다.
효성중공업도 미국 빅테크에 변압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에 4% 이상 올랐고요.
제가 이 뉴스를 보면서 느낀 건 하나였습니다.
AI가 성장한다면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소프트웨어 기업만 볼 게 아니라, 그 산업이 물리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봐야 한다는 겁니다.
전력, 냉각, 광통신, 변압기, 케이블. 이것들이 없으면 AI는 그냥 아이디어에 그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립스틱 효과가 진짜 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설명 갖다 붙인 건가요?
A. 제 경험상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데, 맹신하면 안 됩니다. LVMH가 부진하고 로레알이 강했던 건 실제 수치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다만 로레알이 강한 진짜 이유는 '싸다'가 아니라 다양한 가격대의 포트폴리오를 갖춰서 소비자 이탈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나빠진다고 해서 화장품 전체가 잘 팔리는 게 아니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제품만 살아남는 방향에 가깝습니다.
Q. 미국 Fed가 금리를 올리면 한국에도 영향이 있나요?
A. 직접 느꼈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미 금리 차이가 벌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금리 인상 직후 원달러 환율이 1,370원대로 더 올라갔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올라 국내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이 오고, 대출을 안고 집을 사거나 살 계획인 분들은 금리 부담이 커지는 식으로 연결됩니다.
Q. 저출생 시대에 키즈 관련 사업이 다 망하는 건 아닌가요?
A.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 아이 수가 줄수록 한 아이에게 쓰는 돈은 오히려 더 늘 수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입장객 수를 늘리려는 전략보다, 가족 한 팀이 방문했을 때 충분한 경험과 만족을 가져갈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숫자 경쟁보다 단가 경쟁으로 무게추가 이동하는 셈이죠.
Q. AI 관련 투자할 때 엔비디아 말고 뭘 봐야 하나요?
A. 저는 투자 전문가가 아니라서 종목 추천은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이번 뉴스를 보면서 AI 서비스가 돌아가려면 전력, 변압기, 광통신, 냉각 장비, 연료전지처럼 물리적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어떤 산업이 성장한다고 할 때 그 산업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는 습관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결론
이번 뉴스를 정리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세 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경기가 어렵다고 지갑을 닫는 게 아니라 쓰는 기준을 바꿉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시장이라도 고객 한 명의 단가가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산업이 뜬다고 할 때, 그 산업이 물리적으로 굴러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주변 산업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겁니다.
경제 뉴스를 읽을 때 숫자와 기업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 '그래서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까', '내 생활에서는 이미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을까'를 생각하는 게 더 오래 남더라고요. 제가 직접 써봤더니 그게 훨씬 유용했습니다.